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 연구진이 본능적인 공포 반응을 규정하는 신경회로를 규명했다고 7일 밝혔다. 한진희 교수 연구실 장진호 박사가 1저자로 참여한 해당 논문은 과학저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 7월 16일 온라인판에 실렸다.
골목 모퉁이에서 차가 갑자기 튀어나오면 우리 몸은 순간적으로 멈춰 선다. 이는 ‘동결’(freezing)이라 불리는 대표적인 공포 반응이다. 이렇게 본능적으로 몸이 경직되면서 우리는 차와 충돌하는 사고를 피할 수 있다.
카이스트 생명과학과 한진희 교수와 한국뇌연구원(KBRI) 뇌신경망연구부 박형주 박사 공동 연구팀은 이런 공포 반응을 결정하는 뇌 회로에 주목했다. 사람의 경우 심한 스트레스나 지속적인 생존 위협을 받을 경우 공포 반응이 고장 난 듯한 이상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공황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뇌 회로의 규명은 이런 증세에 대한 효율적인 치료로 이어질 수 있다.
한 교수 연구팀은 전측대상회 피질(ACC, anterior cingulate cortex)라는 전두엽의 영역에 주목했다. 이 부분은 신체적인 고통에 반응하고 통증 정보를 처리하는 영역으로 알려져 있는데, 고도의 연산 기능을 수행하는 전전두엽 피질(PFC, prefrontal cortex)의 일부다. 지금까지 전두엽 뇌 영역이 학습을 통해 획득하는 후천적인 공포 조절 기능을 담당한다는 사실은 밝혀졌지만 선천적 공포에 대한 조절 기능은 밝혀진 바가 없다.
연구진은 빛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뉴런을 활성화할 수 있는 광유전학 기술을 생쥐의 전측대상회 피질에 적용하는 실험을 통해 이 부분과 선천적 공포의 관련성을 보고자 했다. 선천적인 공포를 불러오는 자극으로서 연구진은 생쥐의 천적인 여우의 냄새를 택했다. 실험대상인 생쥐가 이 냄새를 맡는 상황에서 이 영역을 억제하거나 자극해 반응의 변화를 살핀 것이다.
연구진이 이 영역의 뉴런을 억제하자 여우 냄새에 대한 생쥐의 동결 공포 반응이 크게 증폭됐다. 반대로 자극하자 공포 반응은 감소했다. 이 영역은 또한 트라우마 기억에 대한 학습된 공포 반응도 강하게 억제하는 기능을 보였다.
연구진은 나아가 이 영역에서 편도체로 연결되는 일부 뉴런들의 성질을 규명했다. 다양한 신경망 추적 기법을 이용해 하위 연결망을 탐색한 뒤, 공포 반응과 연관이 깊은 배외측 편도체 핵 부분과 이 부분 사이의 주요 연결망을 관찰했다. 연구진은 이 하부 회로를 억제하자 마찬가지로 생쥐의 여우 냄새에 대한 공포 반응이 증가하는 현상까지 확인했다.
한 교수는 이번 연구에 대해 “선천적 위협 자극에 대한 공포 행동반응을 코딩하고 있는 뇌 속 핵심 신경회로를 발견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학술적 의미가 있다. 향후 전측대상회 피질 신경회로를 표적으로 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치료기술 개발의 근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그림설명
ACC 영역의 활성 조절에 의한 본능적 공포 반응 증폭 및 감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