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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의 역사를 쓰는 사람들 Research Highli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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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한솔
논문 Marie-Laure Diebold-Durand*, Hansol Lee*, Laura B.Ruiz Avila*, Haemin Noh, Ho-Chul Shin, Haeri Im, Florian P.Bock, Frank Bürmann, Alexandre Durand, Alrun Basfeld, Sihyun Ham, Jérôme Basquin, Byung-Ha Oh, Stephan Gruber (2017) Structure of Full-Length SMC and Rearrangements Required for Chromosome Organization. Molecular Cell 67, 334-347 (*contributed equally)
한줄요약 SMC의 전체 구조를 최초로 규명함으로써, 콘덴신의 작용 기작에 대한 새로운 가설을 제시했다는 데에 큰 의의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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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1. 논문 내용과 의미를 설명해 주세요.


현미경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조그마한 우리의 세포 속에는 2m가 넘는 기다란 DNA가 들어있습니다. DNA들이 헝클어지지 않고 정상적으로 기능하도록 단단하게 응축(condensation) 시켜주는 단백질이 존재하는데요. 이들이 바로 콘덴신(condensin)입니다.

콘덴신이 없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응축되지 않은 DNA가 세포 속을 제멋대로 떠돌아다니며 저들끼리 꼬이고 엉키게 되겠지요. 주머니에 넣었다가 꼬여버린 이어폰 줄이나 실뭉치에 지어진 매듭들을 풀어내는 것도 우리에겐 힘든데, 그보다 수천 수만 배는 더 가늘고 긴 DNA가 엉키면 오죽할까요. 콘덴신의 기능이 망가지면 우리의 유전정보가 담긴 소중한 DNA는 마구잡이로 헝클어지게 되고, 세포가 분열할 때 DNA가 제대로 나뉘지 못해 결국 세포가 죽게 됩니다인간과 같은 고등동물부터 세균과 같은 작은 생명체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물의 세포에 존재하는 콘덴신은, 이렇듯 세포가 안정적으로 분열하며 정상적인 기능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한 생명활동 필수품이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콘덴신은 어떻게 DNA를 응축시킬까요? 1990년대 중반에 콘덴신이 발견된 이래 지난 20여 년간 많은 연구가 진행됐지만, 그 정확한 메커니즘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는데요. 다만 콘덴신의 부속품 중 하나인 SMC가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는 것은 자명합니다.

 

SMCStructural Maintenance of Chromosome의 약자로, 50nm정도 길이의 길쭉한 단백질인데요. 경첩(Hinge), 머리(Head), 이중나선(coiled coil)이라 불리는 세 가지 중요한 도메인들로 이루어집니다. 구형의 경첩과 머리가 양쪽 말단부위에 위치하며, 긴 이중나선에 의해 연결된 모양새를 띱니다이러한 SMC가 경첩을 통해 또 다른 SMC와 결합하여 이량체를 이루고, ATP 가수분해효소인 머리에 ScpAB라 불리는 또 다른 부속품이 결합하면서 하나의 고리를 형성하며, 그 내부에 여러 가닥의 DNA를 집어넣어 감싸 안는다는 것이 현재까지 알려진 사실입니다우리가 복잡하게 얽힌 전선을 깔끔하게 한데 묶어 정리하듯, 우리의 세포도 SMC를 이용해서 DNA를 묶어서 정리한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콘덴신의 전체적인 모양과 DNA 응축 작용에 대한 대략적인 개념은 어느 정도 알려졌지만, 상세한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우리가 전선을 묶을 때 노끈으로 매듭지어 묶거나 집게로 찝거나 케이블 타이를 당겨 묶는 등의 여러 방법이 있듯, 콘덴신이 DNA를 묶는 방법에도 다양한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을 테니까요. 그 동안 콘덴신의 작용 메커니즘을 밝히기 위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어왔지만, 학계에서 모두가 동의할만한 그럴싸한 모델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었습니다.

 

한편, 단백질의 기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백질의 구조를 밝히는 것이 중요할 텐데요. SMC의 경첩과 머리부분의 경우 원자단위 해상도의 분자구조를 비롯해 다양한 연구들이 이루어진 반면, 긴 이중나선 부위에 관해서는 별로 연구된 바가 없었습니다. 경첩부위는 한 쌍의 SMC를 연결하는 부위이면서 DNA와 상호작용하는 부위이기도 하고, 머리부위는 다른 한 짝과 키스하듯 찰싹 달라붙어야만 ATP를 분해할 수 있는 가수분해효소로서 흥미로운 특성을 보이는 데 비해, 이중나선 부위의 경우 경첩과 머리를 연결하는 것 외에 별다른 기능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학계의 관심사에서 벗어나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간 SMC의 이중나선의 기능적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했는데요. 특히 3년 전 저희 연구실에서 SMC의 경첩 근처의 이중나선 일부 구조를 규명하면서, 이 부위의 이중나선이 DNA와의 상호작용하는 데에 중요하다는 점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후속 연구를 통해 저희는 이중나선 부위를 포함한 SMC의 전체 구조를 규명하는 것이 콘덴신의 작용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이라 판단했고, SMC의 이중나선 부위를 아주 자세히 파헤쳐보기로 했습니다.

 

 

우선 SMC 이중나선 부위에 대하여시스테인 교차결합법(Cysteine crosslinking)”이라는 실험을 수행하여, 이중나선 부위가 공간적으로 어떻게 배치되어있는지에 관한 정보를 얻었습니다. 이를 위해 400 여 개에 달하는 아미노산을 하나씩 시스테인으로 치환하여 교차결합 비율을 측정하는 대규모 스크리닝 작업이 수행됐습니다또한 저희는 X-선 결정학 (X-ray crystallography) 기법을 사용하여 SMC 이중나선 부위의 분자구조 규명을 시도했습니다. X-선 결정학의 특성상 길고 유연한 단백질은 결정화가 잘 되지 않아서 구조 규명이 어렵기 때문에, 이중나선 부위를 세 조각으로 쪼개어 각각의 분자구조를 규명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어떤 조각에서 단백질 결정이 만들어질지 장담할 수 없기에 여러 가지 생물체의 SMC를 다양하게 조각 내어 결정화를 시도하였고, 다행히도 필요한 부위의 단백질 결정들을 얻어 구조를 규명할 수 있었습니다.

시스테인 교차결합 실험 결과에 기반하여 SMC 구조 조각들을 배치함으로써, 저희는 SMC 전체 구조를 규명할 수 있었는데요. 그 결과,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들을 밝혀낼 수 있었습니다먼저, 경첩에 의해 연결된 한 쌍의 SMC가 일자로 나란히 뻗어 막대모양을 이루며, 이러한 막대 형태가 상당히 단단하게 유지됨을 관찰했습니다SMC의 이중나선이 DNA를 감쌀 수 있는 고리모양을 유지하거나 끈처럼 유연한 움직임을 가질 것이라 예상하는 학자들이 많았기에, 이러한 결과는 상당히 고무적이었습니다

또한, SMC의 머리 부근에서 단순한 나선형태가 아닌 특이한 구조가 관찰되었습니다. 최근에 콘덴신이 이 부위를 통해 조력자 단백질과 상호작용하여 DNA를 붙잡는다는 보고가 있어서 더더욱 주목되는 결과인데요. 저희가관절(joint)”로 명명한 이 부위의 존재로 인해, SMC의 머리가 특정 각도로 어긋난 채 안정적인 구조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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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SMC의 머리가 ATP를 분해하기 직전 꽉 물고 있는 구조의 경우, 마치 한 쌍의 머리가 키스하듯 찰싹 달라붙은 모양새를 띠었습니다. 이런 형태를 이루기 위해서는 머리 근처의 이중나선이 V자 형태로 벌어져야만 합니다.


이런 관찰을 바탕으로 저희는, 머리 부분이 ATP를 가수분해하기 위해서는 SMC 전체에 커다란 구조 변화가 일어나야 하며, 그 결과로써 막대모양의 SMC가 일시적으로 동그란 고리 모양을 형성하리라는 가설을 제시할 수 있었습니다.

SMC가 평소에는 막대 모양을 이루다가, ATP가 머리부분에 끼어들면 경첩, 관절, 머리 부분의 협업을 통해 고리모양을 이루면서 긴 DNA 실타래에 끼어들고, ATP가 분해되어 SMC가 막대모양으로 돌아가면 그 머리 근처 공간으로 DNA 가닥이 모이게 되리라는 가설입니다.

그 후 연속적인 ATP 분해로 얻은 에너지를 이용해 계속 한쪽 방향으로 나아감으로써, DNA를 더욱 응축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이지요.

 

이로써 콘덴신 소단위체 간의 상호작용이 깨지지 않고도 DNA응축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셈입니다. 앞으로 후속 연구를 통해, 더 상세한 분자 기작이 밝혀지리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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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연구과정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소개해 주세요.


기억나는 에피소드를 꼽자면 아무래도, 힘들었던 단백질 결정화 과정이 생각납니다. 특히 이번에 규명한 SMC의 여러 부위 중 하나는 긴 알파나선 두 가닥으로만 이루어져있어, 안정적인 크리스탈을 찾는 것은 물론 전자밀도 지도에 아미노산을 끼워 넣는 과정에서도 굉장히 애를 먹었습니다.

또한 구조가 풀릴지 안 풀릴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포항 방사광 가속기에서 실험실 동료들과 함께 밤을 새가며 고생했던 기억이 많이 떠오릅니다. 가속기 빔 라인의 허치(hutch) 문을 끊임없이 열고 닫으며, 방금 올린 크리스탈에서 어떤 회절패턴이 나올지 조마조마하게 기다리다가, 모니터에 나타나는 결과 하나하나에 때론 실망하고 때론 환호했던 순간들.. 그렇게 여차저차 규명된 구조를 시스테인 교차결합 결과에 맞춰서 이어 붙이고, 마침내 완성된 막대모양의 모델을 얻었을 때의 뿌듯함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네요.

 

3. 연구를 통해 얻은 지혜를 후배들에게 들려주세요.


이제 막 1저자 논문을 게재한 입장에서 지혜라고 할만한 것을 드릴 수 있을까 조금 부끄러운 마음이 듭니다만, 제가 학위과정 중에 고민하고 느꼈던 바에 대해서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는 분들, 그리고 이제 학위를 시작하는 분들께 조금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우선은 대학원을 준비하는 분들께, 이미 들어보셨겠지만 공부와 연구는 다르다는 점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학부 때 많이들 대학원 과정을더 공부하기 위해간다고 여기지만, 좀 더 정확히는연구하는 방법을 훈련하기 위한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연구란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고 공표하는 활동이고, 따라서 남들보다 빨리 결과물을 내어 세상에 알려야 하다 보니, 배움에 대한 갈구를 넘어서 성취욕과 명예욕, 경쟁심 같은 또 다른 덕목들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배우는 즐거움이 좋다면, 다른 일을 하면서 취미로 생물학을 공부하는생물 덕후로 지내는 삶이 훨씬 행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대학원에 와서 연구를 하게 되면 공부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일상을 맞닥뜨립니다. 생물학 실험실은 특히 일상 많은 부분을 노동으로 보내게 되는데, 그 일들의 속성이 본인에게 얼마나 잘 맞는지도 현실적으로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실험실을 선택하기 전에, 최대한 다양한 실험실을 경험해보라고 조언 드리고 싶습니다. 좀더 즐겁고 생산성 있는 학위과정을 보내기 위해서, 어떤 일상이 본인에게 잘 맞는지 미리 경험해보고 가늠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와 더불어, 다양한 랩을 거치며 각각의 실험실마다 가진 장단점을 경험하고 기억 속에 쌓아두는 것이, 랩을 선택한 후에도 앞으로 겪을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에 큰 자산이 될 것입니다. 다른 랩과 비교해서 우리 실험실의 어떤 점이 좋은지 알면 자기 랩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고, 만약 부족한 부분이 눈에 보이면 개선하자는 목소리를 낼 수도 있으니까요. 연구실 차원에서도, 다양한 실험실 경험을 가진 사람이 들어오는 것은 좋은 일이 될 것이구요.

 

그렇게 어떤 실험실에 소속되어 연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성공적인 연구를 위해서 꾸준하고 성실한 태도, 그리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 치열하게 고민해서 어떻게든 해결방법을 찾아내는 집요함과 집중력을 갖춰야 할 텐데요.

하지만 처음에 아무리 큰 흥미와 열정을 갖고 시작했더라도, 그런 태도를 늘 유지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실험이 생각대로 되는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적으니까요. 그럴 때일수록 어떻게든 해내겠다는 마음을 먹고 절박하게 해나가야 하겠지만, 번번한 실패로 좌절하는 상황이 계속되면 의욕을 잃게 되고, 더 나아가 이게 내 길이 맞는지 자꾸만 뒤돌아보며 회의에 빠지기도 합니다. 성공할지 알 수 없는 불안감 속에 매일을 실패로 보내며 발전 없이 정체되어있다는 느낌, 나는 여기서 대체 무얼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그런 것들이 대학원 생활에서 가장 힘든 요소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을 즐겁게 보내는 방법을 찾으려 노력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취미가 됐든 인간관계가 됐든, 연구와 별개로 즐기며 발전시킬 수 있는 무언가를 하나쯤 마련해두는 것도 좋고요. 일상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챙기는 것이, 꾸준한 스트레스를 무던히 이겨내는 은근한 힘이 됩니다.

그런 점에서 늘 주변 사람들과 활발히 대화를 나누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특히 일상의 대부분을 공유하는 실험실 식구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동료들과 오가는 대화 속에서 실험에 대한 아이디어를 자연스럽게 발전시킬 수 있는 소중한 순간들이 오기도 하구요. 무엇보다도, 연구생활의 어려움을 가장 크게 공감하며 위로하고 의지를 세워줄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옆에서 함께하는 동료들이니까요. 늘 열린 자세로 사람들과 소통하려 노력하는 것이 연구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 아닐까 합니다.

 

4. 나는 왜 명과학자가 되었는가?

 

생명과학자란 무엇인가에 관해 먼저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생명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을 가지고 궁금한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답을 찾아보는 사람이 생명과학자라면, 아무래도 언젠가부터 저도 모르게 모든 살아 움직이는 것들의 매력에 이끌려 생명과학자가 되었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작은 곤충이나 동물들이 친구처럼 느껴졌고, 동식물과 관련된 책이나 다큐멘터리를 챙겨보고 때론 산에서 들에서 그들을 잡아와 기르며 관찰하던 경험들이 너무도 즐거웠습니다. 존경하는 위인을 적으라는 학창시절의 진부한 질문에는 주저 없이 파브르와 시튼을 적곤 했어요. 그런 저의 성향들이 발전하여, 대학에 와서도 생명과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생명과학자를 생명과학 연구를 하는 사람으로 국한한다면, 솔직히 말해 별다른 이유가 없었습니다. 기실, 대학원에 와서 학위를 하게 된 이유는 막연히 그 길이 당연하다고 여겼기 때문이었어요. 생명과학 공부를 계속 하고 싶으면 학부를 마친 뒤 대학원에 가는 게 당연하고, 박사학위를 받은 후 본격적으로 나의 연구를 시작하는 것이 당연한 길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다만 수많은 생물학 분야 중에서 어떤 연구를 해야 가장 즐겁게 할 수 있을지 잘 몰랐고 망설여졌습니다. 그래서 신경생물학, 면역학, 유전학, 그리고 다른 대학의 생태학 연구실까지, 관심 있었던 여러 실험실을 찾아 다니며 연구 경험을 다양하게 쌓으려 노력했어요. 우여곡절 끝에 구조생물학 실험실에서 학위를 시작하게 되었지만, 이 길이 정말 나에게 맞는 길일까에 대한 불안감은 여전히 안고 있었습니다.

랩 생활을 시작하면서 그 솔직한 심정을 교수님께도 살짝 말씀 드렸었고, 그 때 교수님께서는 학위과정이란 연구하는 방법을 훈련하는 과정이니, 지금 분야에 대한 확신이 없더라도 이 곳에서 확실한 훈련을 받고 나면 나중에 하고 싶은 연구를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답해주셨어요. 그 말씀이 이후에 연구를 수행하는 데에 큰 용기와 힘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학위과정에서 힘든 순간들이 여러 번 찾아왔습니다. 데이터를 얻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반복노동이 무의미하게 다가올 때도 많았고, 연구주제에만 관심을 집중하다 보니 사고가 편협해지는 느낌이 드는 것도 참 싫었습니다. 이렇게 힘들게 학위를 받아도, 수많은 박사들이 양산되는 현실에서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막막한 마음에 괴롭기도 했고요. 그저 생명과학 지식을 배우는 게 좋다면, 연구가 아닌 다른 적당한 일을 하면서 대중과학 잡지나 리뷰논문을 읽으며 종종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아마추어 생명과학자로 사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하지만 분명, 이 과정을 통해 얻어낼 값진 몫이 있으리라 믿고, 끊임없이 무던해지려고 애썼습니다.

그렇게 버티는 시간을 보내다 어느새 돌아보니, 어느 순간 저도 모르게 그 동안 제 안에 쌓아둔 값진 것들이 많음을 깨달았습니다. 우선은 구조생물학의 매력이 분명히 와 닿았습니다. 단백질이나 DNA를 원자수준의 해상도로 보는 것 자체도 신기했고, 구조를 보고 세운 가설들이 척척 들어맞는 실험 결과가 나오면서, 모호했던 생명현상들이 정확하게 설명되는 과정을 알아가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구조를 규명하는 과정이 어렵긴 하지만, 여태껏 알려지지 않았던 단백질 구조가 제 손으로 풀렸을 때의 뿌듯함도 분명했습니다.

무엇보다, 연구의 즐거움을 알게 된 것이 가장 큰 자산이었습니다. 실패가 반복되는 와중에도 어떻게든 답을 찾으려 노력하다가 작은 성공을 이루었을 때의 기쁨, 그런 순간들이 모이고 모여 그림이 완성되어감을 깨달았을 때, 이런 것이 연구의 즐거움이구나 하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연구주제였던 콘덴신도 굉장히 매력적인 단백질이었습니다. 생물학 전공자들에게 DNA가 염색체로 응축된다는 것은 너무나 익숙한 사실이지만, 그 긴 DNA가 어떻게 그런 형태로 응축되어 세포 속에 보관되는지, 생각할수록 참으로 신기하고 놀라운 일입니다. 실용적이고 일상생활에 더 와 닿는 연구도 의미가 있겠지만 연구를 계속할 수록, 이렇게 생명현상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고 답을 찾으며 지식의 지평을 넓혀가는 일에 함께하고 있다는 보람과 자부심이 값지게 다가옵니다.

졸업 후에 어떤 일을 하게 될지는 아직 고민 중이지만, 연구를 계속 하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콘덴신이나 SMC와 관련된 연구를 계속하는 것도 좋겠지만, 학위과정 중에 배운 구조생물학적 지식과 연구기법을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보고 싶기도 합니다.

앞으로는, 나는 어떤 생명과학자가 될 것인가? 하는 물음을 계속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모두가 궁금해하는 생명과학의 난제를 풀어가며 인류의 지식을 발전시키는 위대한 과학자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요. 하지만 무엇보다, 생명과학을 즐기고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고 즐겁게 연구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5. 기타 하고 싶은 말


대학원에서 보낸 지난 시간들은 배움과 성장의 시간이기도 했지만, 제 자신의 부족함을 한없이 깨닫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이번 연구를 진행하면서, 논문에 이름이 적힌 분들은 물론 그 외에도 정말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 모든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의 성과는 없었으리란 것을 알기에 그저 감사하고, 한편 부끄러운 마음입니다.

늘 연구자로서의 모범을 몸소 보여주시며 열정적으로 연구를 이끌고 지도해주신 오병하 교수님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바탕으로 학문적 통찰을 교류하며 성공적인 공동연구를 이끈 Stephan Gruber 박사님과 연구팀원들께도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후배이자 든든한 동료로서 결정화 작업을 비롯해 여러 난관들을 함께 해결해냈던 노해민 양, 실험실 사수이자 SMC 선행연구자로서 오랜 시간 많은 도움을 주시고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나눠주신 신호철 박사님, 그리고 연구 내적 외적으로 서로 돕고 의지하며 지금까지 즐거운 실험실 생활을 함께한 모든 실험실 식구들께 깊이 감사 드립니다. 언제나 저의 든든한 버팀목인 가족들과 친구들, 관심과 응원 주셨던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아직 앞으로 어떤 일들을 하게 될지 정해지지 않았지만, 이번에 느낀 저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겠다고 다짐해봅니다. 언젠가 제 위치에서 누군가에게 든든한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서 살 수 있도록 계속 발전해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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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권도형 (분자세포면역학 연구실, 강석조 교수)

    ▷인터뷰 1. 논문 내용과 의미를 설명해 주세요. 일반적으로 세포의 DNA는 핵내에만 존재합니다. 만약 사이토졸 내에서 DNA센서가 DNA를 인식한다면, 세포는 외부 병원균의 DNA로 인식하여 제1형 인터페론을 생성하는 면역반응을 유도합니다. ...
    Date2017.08.21 By생명과학과 Views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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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권도형 (분자세포면역학 연구실, 강석조 교수)

    ▷인터뷰 1. 논문 내용과 의미를 설명해 주세요. 미토콘드리아는 에너지 생산뿐만 아니라, 칼슘의 저장소, Apoptosis, lipid 합성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세포소기관으로, 에너지 상태 외에도 다양한 ion의 흐름, 외...
    Date2017.09.20 By생명과학과 Views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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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곽미정 (구조생명과학 연구실, 오병하 교수)

    ▷인터뷰 1. 논문 내용과 의미를 설명해 주세요. 본 논문은 폐렴을 일으키는 레지오넬라 뉴모필라 균의 독성단백질 분비 기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Type IV coupling protein complex(T4CP)의 전체 모델 구조를 규명한 논문입니다 (아래그림). ...
    Date2017.08.21 By생명과학과 Views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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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경현호, 최윤주(생체분자공학 실험실, 김학성 교수)

    ▷인터뷰 1. 논문 내용과 의미를 설명해 주세요. 생명은 면역 체계라는 복잡한 방어 수단을 통해 자신을 보호합니다. 면역 체계의 핵심에는 ‘자신’과 ‘자신이 아닌 것’을 분자 단위에서 구분하는 대응 기...
    Date2017.10.13 By생명과학과 Views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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