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1. 논문 내용과 의미를 설명해 주세요.
본 논문은 제가 Nature Communications 에 개제하였던 연구 내용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Transcription> 이라는 잡지사에서 제 논문에 관한 review 논문을 작성해 달라는 부탁을 보내와서, 제가 발표했던 연구 성과들 중, 세포 내에서 ‘전사 신장 과정 (transcription elongation)’을 촉진하기 위하여 일어나는 ‘뉴클레오좀 역학 (nucleosome dynamics)’을 생명정보학적 증거들을 기반으로 수학적 모델을 세워 설명한 부분을 강조하여 발표한 ‘Point-of-view’ 논문입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듯, 진핵 세포 (eukaryotic cell)의 염색질 (chromatin)은 DNA가 히스톤 (histone) 단백질을 감고 있는 뉴클레오좀 (nucleosome) 구조로 응축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진핵 세포의 염색질에서 전사 과정을 수행하는 RNA 중합효소 II (RNA polymerase II)가 전사 과정 중에 만나게 되는 뉴클레오좀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뉴클레오좀 장벽 (nucleosome barrier)’을 해소 하는 기작이 필수적으로 요구됩니다. 하지만, 그 동안 이루어져 온 수많은 연구들은 이 전사 과정을 구성하는 세부 기작들 중 ‘전사 시작 (transcription initiation)’ 에 집중되어 있었기에 전사 시작 이후에 이루어지는 ‘전사 신장 (transcription elongation)’ 과정의 ‘뉴클레오좀 역학’에 대한 연구는 많이 부족하였습니다. 그 동안 많은 과학자들이 ‘염색질 개조 효소 군 (chromatin remodeler family)’이 ‘뉴클레오좀 분해 (nucleosome disassembly)’를 통해 이 ‘전사 신장’ 과정에서 나타나는 ‘뉴클레오좀 장벽’을 해소할 것이라 추측해 왔지만, 이를 명확하게 밝힌 연구는 없었습니다. 거기에다 이 ‘뉴클레오좀 분해’ 현상을 정량적으로 관찰하는 방법으로 사용해 왔던 ‘히스톤 교체 (histone exchange)’ 실험 기법으로는 ‘전사 신장’ 과정 중에 일어나는 ‘뉴클레오좀 분해’를 제대로 관찰할 수 없음이 기존 연구들에서 드러남에 따라 새로운 실험 기법까지 요구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본 논문은 ‘유전자 전사 신장 과정’에서 일어나는 ‘뉴클레오좀 장벽’을 해소하는 ‘염색질 개조 효소 Fun30Fft3 (사람에서는 SMARCAD1)’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ChIP-seq 이라는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 (Next Generation Sequencing; NGS)’ 기술을 통해 밝혀냄으로써 ‘염색질 개조 효소’가 실제로 ‘전사 신장’ 과정에서 ‘뉴클레오좀 방어벽’을 해소하는 역할을 수행함을 증명하였습니다. 거기에 ChIP-seq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뉴클레오좀 역학’에 대한 수학적 모델을 통해 기존에 ‘히스톤 교체’ 실험 기법으로 관찰한 것은 ‘뉴클레오좀 분해’가 아닌 ‘뉴클레오좀 손실 (nucleosome loss)’이며, ‘전사 신장’ 과정 중 일어나는 ‘뉴클레오좀 역학’은 크게 뉴클레오좀의 ‘분해 (disassembly)’와 ‘손실 (loss)’, 그리고 ‘재조립 (reassembly)’이라는 세 가지 요소에 의해 다음의 간단한 수식 관계로 설명될 수 있음을 처음으로 정량적으로 설명해내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D = 뉴클레오좀 분해, L = 뉴클레오좀 손실, R = 뉴클레오좀 재조립)
또한, 이 수식은 추후에 각 ‘염색질 개조 효소’가 ‘전사 신장’ 과정 중 ‘뉴클레오좀의 분해’에 얼마나 기여하는가를 추론해내는데 사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각 ‘염색질 개조 효소’들 중 어떠한 단백질이 ‘전사 신장’ 과정 중의 ‘뉴클레오좀 역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지 밝히는 데 사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학문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2. 연구과정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소개해 주세요.
본 연구는 한 마디로 ‘끊임없는 논의 끝에 나온 결과’라고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다. 본 연구의 초창기에 저는 Fun30Fft3 가 다양한 스트레스 환경에서 발현되는 ‘유도 유전자 (inducible gene)’의 발현에 어떻게 관여하는가를 연구하던 도중, 이 Fun30Fft3 가 이 ‘유도 유전자’들의 유도 속도를 촉진하는 데는 중요하지만, 최종적으로 발현될 수 있는 정도는 유지된다는 신기한 현상을 우연히 발견하였습니다. 그 당시 이러한 현상이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 지 전혀 알지 못했던 저는 제 연구실에 함께 계셨던 최은식 박사님과 여러 번 논의한 끝에, 이러한 현상은 Fun30Fft3 가 전사 과정 중 ‘전사 시작’ 과정이 아닌, ‘전사 신장’ 과정에 특이적으로 관여할 때만 나타날 수 있다는 가설을 세우고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연구실에 갖추어져 있던 ChIP-seq 실험 및 분석 기법이 제가 원하는 수준의 결과까지 보여주지 못했기에, 저는 그 실험 및 분석 기법부터 교수님 및 연구실 사람들과의 수많은 논의와 함께 새롭게 다듬어야 했습니다. 거기에다 Fun30Fft3가 실제로 ‘전사 신장’ 과정 중에 ‘뉴클레오좀 분해’를 촉진하는가에 대한 해답은 그 당시에 있던 접근 방법들로는 명확하게 보여지지 않았기에, 이로 인해 몇 일 동안 제가 가진 데이터들을 기반으로 최은식 박사님과 끊임없이 논의를 해야만 하였습니다. 그 끝에 저희는 ‘뉴클레오좀 역학’은 뉴클레오좀의 ‘분해 (disassembly)’와 ‘손실 (loss)’, 그리고 ‘재조립 (reassembly)’이라는 세 가지 요소로 설명되어야 한다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낼 수 있었고, 이후 저는 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수학적 모델로 정리하고, 제가 가진 ChIP-seq 데이터들로 시각화 하기 위해 약 일주일 간 말 그대로 머리 터지도록 고민 하는 시간들을 보내었습니다. 그 과정은 정말 힘들었지만, 그 결과로 도출해낸 결론이 정말 ‘아름답게’ 모든 유전자들에서 맞아 떨어질 때의 희열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제 연구 성과가 다른 과학자들에게도 좋게 평가되어 본 연구를 발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잡지사들로부터 review 논문 작성을 초청받았을 때는 솔직히 아직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신기했습니다.
3. 연구를 통해 얻은 지혜를 후배들에게 들려주세요.
기초 생물학자로써, 기초 생물학을 연구하는 후배들에게 꼭 하고 싶은 이야기라면 ‘인기 있는 연구 주제’를 쫓는 사람이 아니라, ‘중요한 연구’를 하고자 다른 사람들과 끝까지 노력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는 점입니다. 저는 ‘기초 생물학자’란 ‘생물의 본질을 발견하고, 알아내는 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생물의 본질’은, 그 당시의 인기 주제라는 점으로 인해 잠깐 사람들의 관심을 받다 잊혀지는 연구들이 아니라,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에게 그 분야의 ‘근본적인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낸 ‘중요한 연구’들을 통해 발견해내고 알아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인기 있는 연구 주제’들은 이미 누군가가 ‘중요한 연구’를 해내었기 때문에 그 연구 가치를 인정받아 인기 있는 주제가 된 것입니다. 이는 앞으로 그 주제에서 이루어지는 후속 연구들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발견들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죠. 이는 ‘생물의 본질을 알아간다’는 기초 생물학자의 본질에 비추어 볼 때, 기초 생물학자로써 상당히 아쉬운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한편, 이러한 ‘중요한 연구’들이 오늘날까지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는 대부분 ‘새로운 아이디어’나 ‘새로운 실험 기술이나 분석 기법’을 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는 이 연구에 도전하는 자에게 수많은 실패를 맛 보게 함을 의미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의 수많은 논의, 그리고 끈질긴 노력을 요구함을 의미합니다. 제가 만일 우연히 찾아냈던 현상을 논의 없이 가볍게 넘겨 버렸다거나, 연구 주제가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는 인기 주제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가볍게 버렸거나, 혹은 새로운 접근법을 시도하지 않고 도중에 쉽게 포기하였더라면 저는 review 논문 작성을 초청 받을 정도로 ‘중요한 연구’를 해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앞으로 제 후배 기초 생물학자들도 생물학의 ‘근본적인 질문’들에 대한 답을 낼 수 있는 ‘중요한 연구’들을 해내는 과학자들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4. 나는 왜 생명과학자가 되었는가?
제가 생명 과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는, 대구 과학 고등학교 시절부터 수학과 물리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잘 하지는 못해서 생물 영재반에 들어가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 카이스트에서 생명과학 과에 들어가 전공 수업을 듣다 보니 나 자신은 수술을 통해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나, 기존에 알려진 지식을 바탕으로 실제로 이용이 가능한 약이나 기술을 개발하는 공학 쪽 보다는, 말 그대로 새로운 사실과 진실을 찾아내는 기초 과학 쪽이 잘 맞는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부터 학부 졸업 때까지 제 은사이신 이대엽 교수님 연구실에서 개별연구, URP 및 졸업연구를 하면서 다양한 실험 기법들에 대한 기초를 익혀가면서 기초 생물학자라는 직종과 유전자 전사 과정을 연구하는 부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5. 다른 하고 싶은 이야기
이 연구는 자신의 관심 분야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 뜻대로 연구를 진행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시고, 연구의 완성도를 곁에서 끝까지 지도해주셨던 이대엽 교수님 덕분에 시작될 수 있었고, 성공적으로 마무리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본 연구를 하는 동안 경험과 지식이 부족한 저와 항상 논의해주신 최은식 박사님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이 연구의 주요한 아이디어들은 세워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또한 제 데이터의 대부분을 차지한 ChIP-seq 데이터 분석의 기초를 가르쳐 주신 단국대의 강근수 교수님과 제가 연구를 하는 동안 많은 응원을 해주었던 연구실 동료들, 대학교 때부터 함께 동고동락해왔던 지헌이 형, 영호 형, 한솔이 형, 건수 형, 재욱이, 그리고 저를 지금까지 제가 꿈꾸는 방향대로 나아갈 수 있도록 양육해주신 부모님과 제가 걱정하지 않게 자신의 길을 잘 나아 간 동생이 없었더라면 이렇게 멋진 연구를 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이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