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생명과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요?
제가 초등학교 시절, 강원도 정선에서 살 때였죠. 야생화에 관심이 많으신 아버지와 함께 산과 들에서 꽃구경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 나무의 이름은...… 참 예쁘지 않니?” 같은 대화가 일상적인 대화였죠. 아버지 덕분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쉽게 지나쳐버리는 작은 꽃 한 송이도 예쁜 이름을 갖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냥
식물 1, 식물 2, 식물 3… 같은 이름들이 아니라, 그 꽃의 특징과 생김새에 맞는 이름들이
붙여져 있다는 것이 너무 흥미로웠습니다. 생명현상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것도 좋았지만, 생명체 각각의 예쁜 이름들 자체에 마음이 더 끌렸거든요.
대학에 와서 생명과학을 더 깊이 배우다보니 상황은 조금 달라졌습니다. 무수한
단백질과 유전자, 세포마다 일일이 예쁜 이름을 붙이기는 무리가 있어서인지, 실험을 하다보니 그런 것인지, 아니면 전 세계 과학자들의 소통 때문이었는지
‘DnaA’, ‘DnaB’ 같이 감성없이 불리는 이름들이 많아졌거든요.
물론 어떤 면에서는 분류되어있는 기호와 숫자로 단백질을 표현하면 단백질들을 효율적으로 분류/표기할
수 있겠지만, 제가 자연에서 꽃과 나무를 볼 때 들던 순수한 감정들이 사라져가는 느낌이 살살 들었죠. 중요한 단백질의 이름이 저런 기호들의 나열이라면… 외우는 것도 고역일테고요.
다행스럽게도, 새로 발견한 단백질/유전자/생명체에 감성적이고 인문학적인 이름을 지어주는 생물학자들도 참 많은 것 같아요.
Ubiquitin을 붙여서 target protein을 proteasome으로
갈아버리는 기능을 가진 subunit의 이름에 KMD - Kiss
Me Deadly( !!! )라는 이름을 붙여주거나, 곤충 뱃속에 들어있는 기생충에서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연상한 누군가가 ‘Gordius’라는 속 (genus) 명을
지어준다거나 하는거처럼 말이죠. 그 유명한 ‘연가시’의 학명이 Gordius aquaticus 죠. 지름 1mm, 길이 2m에
달하는 기생충이 곤충 몸 속에 꼬여있다고 하니, 그걸 기어코 풀어내서 연구하던 연구자의 고뇌와 험한
말들이 느껴지지 않나요?
아무튼, 저는 이런 이름들을 보면서 생명과학이 인류와 함께 발전한
과학이라는 것을 깊이 느꼈습니다. 수백 년 전 자연에서 새로운걸 찾은 누군가가, 그것의 이름을 붙여주고 대대손손 전달하는, 그 벅찬 감정을 오늘날도
느낄 수 있다는 게 참 멋집니다. 생명이란 끊임없이 진화하기 때문에 이름 붙일 새로운 것들도 얼마든지
생겨날테니, 이를 계속 연구하다보면 저도 생명과학의 한 페이지에 멋진 이름을 붙일 기회도 상상해 보고요. 아마 이런 느낌 덕분에 저는 생명과학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생명현상을 한가지만 소개해주세요
도시의 비둘기들은 겁이 없죠. 사람들이 지나다니거나, 차들이 옆을 쌩쌩 지나다녀도 마치 나는 법을 잊은 것처럼 여유롭게 ‘걸어서’ 피해다니죠. 그런데 이 비둘기들 앞에서 지갑 같은 물체를 위로 살짝
집어던지면 순식간에 날아가버립니다. 신기하게도 까치들 앞에서도 물체를 위로 던지면 도망가버립니다.
더 신기한 사실은, 물체를 떨어뜨리면 도망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멀리 있는 비둘기나 까치들은 떨어지는 사물에는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더군요.
그냥 위로 던져올려진 물체를 보면 날아가 버리더군요. 이 글을 읽으신 분들도 한번쯤 시도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재밌어요.
언급한 생명현상에 대해 가지고 계신 가설을 말해 주세요.
날기를 까먹은 비둘기들이 지갑이 날아가는 걸 보고 ‘아 나도 다시
날아야겠다’ 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동물행동학을 같이 들었던
친구들과 이 행동을 설명할 가설을 찾아 봤습니다. 우리는 이 새들이 무리지어 산다는 사실에 주목했죠. ‘무리지어서 섭식활동을 하는 새들이 효율적으로 도망가려면 어떤 방법이 적합할까?’ 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개별로 사주경계를 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위험을 감지한 동료가 도망가는 것을 보고 날아가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지 않을까요? 내 친구가 날아오르는지만 보면 되니까요. 실제로 철새나 참새같이
한번에 우루루 날아가는 새들의 모습을 본 기억도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무리지어 생활하는 비둘기와 까치들은 이런 위로 올라가는 시각 자극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행동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지고 계신 가설을 어떤 실험적인 방법들로 증명할 수 있을까요?
야외에서 실험을 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위로 올라가는 시각자극에만
강하게 반응하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에, 사람이 물체를 던지기 보다는,
특정 장치를 설계해서 물체를 쏴 올리거나, 떨어뜨릴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기록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아니면, 실험실에서 간단한 조류 모델을
선정해서 실험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위로 올라가는 시각자극을 디스플레이로 띄워서 뇌의 어떤 부위가
활성화 되는지도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개별/졸업연구에서 진행한 실험의 내용과 의미를 설명해 주세요. 또는 배웠던 내용중 가장 기억에 남는 흥미있는 내용을 말해 주세요.
그래서 장치를 만들어서 “까치가 도망가는 행동”을 알아보았습니다. 카메라와, 공을
위로 발사하는 원통형 실험장치를 들고 여름방학 때 낑낑대며 실험을 했죠. 까치를 불러모으기 위해 몇
시간 전부터 과자를 깔아놓고, 저는 나무그늘 밑에 숨어서 카메라를 돌리고, 장치를 작동시켰습니다. 원격으로 작동시켜야 해서 투명한 낚시줄을
사용해서 장치를 작동시켰죠.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조악하고, 아쉬움이
많이 남는 실험이었습니다. 하지만 필드에 나와서 생물을 대상으로 실험하는 것이 재밌었고, 제게 색다른 경험을 주었죠. 실험 결과 그닥 의미있는 성과를 얻지는
못했지만, 나중에라도 다시 해보고싶은 새로운 느낌이었습니다.
학과/실험실 생활 또는 연구/공부
과정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소개해주세요
저는 생명과학과 학부생들을 인터뷰하는 학생 기자단 ‘유후 (You Who)’에서 많은 생명과학과 학생들을 만나고 있어요. 갓
진입한 2학년 진입생들부터, URP나 개별 연구를 열심히
하는 선배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게 참 재미있더라고요. 어떤 생각을 하면서 학과 생활을 하는지 알아내고, 그 사람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도 전하고 나누는게 재미있습니다. 아직 이렇다 할 연구실 경험이 없다보니, 연구를 열심히 하는 친구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엄청 열심히 연구한 내용을 반짝이는 눈으로 설명하는 모습을 보면 제가 다 벅차오르고, 나도
얼른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음학기부터는 저도 개별연구를 해 보려고 합니다.
다른 하고 싶은 이야기
저는 거시적인 생명현상을 찾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아주 세밀하고
분자적인 관점에서 생명현상을 탐구하는 것도 재미있긴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과 연결되어있는
큼직큼직한 생명현상을 찾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직 어떤 분야로 나아가게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다양한 과목들을 모두 들어보고 있죠. 그래도 제가
생명과학을 좋아하는 순수한 마음은 잊지 않고 계속 이어가고 싶습니다. 자연과학을 하는 사람에게 가혹한
시기라지만, 자신만의 소신을 가지고 끝까지 연구하시는 분들을 보면 언제나 존경스럽습니다. 우리 생물하는 사람들 모두 힘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