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현지시각) 사우스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진에딧(GenEdit)의 실험실은 바삐 돌아가고 있었다. 한쪽에선 체내 원하는 곳에 유전자 치료물질을 안전하게 전달하는 물질을 찾기 위해 폴리머 나노입자를 합성하는 기계가 작동 중이었다.
폴리머 나노입자는 진에딧이 가진 기술이다. 몸 안에서 유전질환을 일으키는 변이 유전자를 치료할 수 있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등을 둘러 싸서 체내 원하는 곳에 안전하게 전달하는 물질이다. 현재는 원숭이 대상 임상시험에서 효과를 증명했고, 인체 대상 임상시험을 앞두고 있다.
진에딧은 유전자 치료 분야에서 가장 주목 받는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이다.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벤처캐피탈이자 ‘유니콘 감별사’로 유명한 세콰이어캐피탈이 시드 단계부터 투자를 했다. 진에딧의 기술이 현실화되면 그동안 고칠 수 없는 것으로 인식된 각종 유전 질환을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진에딧은 UC버클리 생명공학과 박사인 이근우(33) 대표와 박효민(41) 수석부사장이 2016년 공동 설립했다. 7일 만난 두 사람은 “이르면 5년 후부터는 유전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본다”며 “유전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질병 중 하나로 바꾸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전 세계 석학 스카우트 제안 거절하고 창업
이근우 대표는 대구과학고를 나온 카이스트 생명과학과 06학번이다. UC버클리에서 바이오공학 박사를 땄다. 약물 전달학 중 단백질 전달 분야를 전공했다. 박 부사장은 고려대 생명공학과 00학번으로, 동대 대학원에서 식품학 석사를 했고, 버클리에서 대사질환 연구로 박사가 됐다. 두 사람은 버클리 내 한인 생명과학자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2010년대 중반 유전자 치료 분야에는 획기적인 치료법이 등장했다. 바로 유전자 가위(CRISPR)다. 제니퍼 다우드나 UC버클리 교수가 개발한 기술로, 체내에서 유전질환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교정하는 기술이다. 제니퍼 다우드나 교수는 이 기술로 2020년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바이오 업계는 환호했지만 문제가 있었다. 치료물질을 체내 원하는 곳에 전달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근우 대표는 박사 과정 중 고분자화합물인 폴리머 나노 입자를 통해 몸 안에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를 안전하게 전달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네이처 계열 학술지에 논문을 실었고 학계에 입소문이 났다. 이론적으로 제니퍼 다우드나 교수의 유전자가위 기술과 이근우 대표의 전달 기술을 결합하면 유전자 치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제니퍼 다우드나 교수, 펑장 MIT 교수, 모더나 창업자인 밥 랭어 MIT 교수 등으로부터 박사후연구원 제의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창업을 선택했다. “유전자 치료제를 전달하는 물질 개발은 학계에서는 해결하지 못하는 매우 큰 스케일의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산업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창업을 택했습니다.”
◇사업 초기부터 세콰이어 선택받아
이 대표는 한인 모임에서 호형호제하며 지낸 박 부사장과 의기투합했고, 버클리의 창업 지원 프로그램인 ‘스카이덱’ 도움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이 대표가 기술 개발 등 전체적인 부분을 맡고, 박 부사장이 회사 인사나 운영 관련 업무를 도맡는다.
진에딧은 사업 시작 후 얼마되지 않아 뜻밖의 기회를 잡았다. 실리콘밸리의 대표 벤처캐피탈인 세콰이어가 시드 투자에 나선 것이다. “우리의 사업이 비즈니스적으로 의미가 있는지 투자자들에게 검증을 받자는 심정으로 첫 피칭을 했습니다. 이 때 낯선 사람이 ‘피칭을 함께 들어도 되느냐’고 했죠. 알고 보니 그분이 세콰이어 소속이었습니다. 세콰이어는 투자에 앞서 딱 하나만 묻더군요. ‘이걸로 10년 뒤에 세상이 변할 것 같으냐’고요.”
이 대표는 “이 질문에 10년 뒤 인류의 삶이 유전자 치료로 변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 미래를 여는 데 의미있는 기술을 개발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고 답했다. 세콰이어가 시드 단계에서 한인 스타트업에 투자한 것은 진에딧이 지금까지 유일무이하다.
◇유전자 치료 신약 개발이 최종 목표
진에딧은 자체 개발한 폴리머 기반 나노입자 전달체를 통해 뇌나 척수 등 중추신경계 쪽에 유전자 치료 물질을 전달하는 방법을 검증했다. 진에딧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신체 내에 유전자 치료제를 전달하는 나노 입자를 개발 중이다. 박 부사장은 “폴리머 나노 입자를 다양하게 디자인해 유전자 치료물질을 간이나 다른 기관으로 정확하게 보낼 수 있는 물질을 개발하고 있다”며 “수천·수만개의 나노입자를 만들어 이 입자들의 성능을 분석하고 이를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했다. ‘나노갤럭시’라는 플랫폼이다. 현재까지 진에딧은 5만건에 달하는 폴리머 나노입자 정보를 데이터로 구축했다. 이 대표는 “창업 후 5년간 전달 기술을 검증하기 위해 많은 연구를 했고, 그동안은 외부로 성공 결과 등을 발표하지 않는 ‘스텔스 모드’였다”며 “하지만 올해 이 기술이 효과가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했다.
특히 mRNA 방식으로 만든 코로나 백신이 효과를 보이면서, 진에딧의 사업도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 유전자 치료를 하기 위해 생긴 mRNA 방식이 백신을 통해 검증되면서 유전자 치료 시장이 빠르게 개화한 것이다.
지난 9월 진에딧은 2600만달러(약 300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다. KTB네트워크, 컴퍼니케이파트너스, 한국투자파트너스가 리드투자를 했고, 세계적 제약사인 일라이 릴리, 데일리파트너스, KB인베스트먼트, IMM인베스트먼트 등 국내 대표적인 VC가 투자에 합류했다. 기존 투자자였던 세콰이어, SK홀딩스, 보우캐피털도 후속 투자에 참여했다. 진에딧을 이를 통해 인재 영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내년엔 시리즈B 투자를 진행할 예정이다.
진에딧의 최종 목표는 단순 전달 물질 개발에 그치지 않는다. 지금까지 기존에 없던 유전자 치료 전달 물질 플랫폼을 만들었다면 이제는 이를 바탕으로 유전자 치료 신약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박 부사장은 “우리가 구축한 유전자 치료제 전달물질 플랫폼이 하나의 주류 기술이 되고, 그 기술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회사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했고, 이 대표는 “유전자 치료제를 통해 한 분의 환자라도 실제 치료가 되는 것을 보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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