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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다. 서울대 화학과 97학번. 그런데 화학보다는 환경문제에 관심이 더 많았다. 생태계를 알고 싶었고, 식물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학과도 기웃기웃했다.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계속할 생각이 없었다. 3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갔다. 복학하니 화학과 동기생이 말해줬다. “식물분자생물학을 연구한 교수님이 새로 화학과에 왔어. 그분에게 한번 가봐.” 그래서 박충모 교수를 찾아갔다.
   
   박 교수 연구가 흥미롭게 들려 그의 실험실에 들어갔다. 2004년에 대학원에 진학했고 2009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 교수는 애기장대 연구자다. 나 역시 박사과정 공부를 하며 애기장대를 연구했다. 내 앞에 있는 주간조선 기자가 “애기장대풀이 뭐냐”고 묻는다. 카이스트 생물학과로 나를 취재하러 온 기자다.
   
   애기장대는 대표적인 모델식물이다. 동물학자가 연구를 위해 쥐, 영장류, 예쁜꼬마선충과 같은 ‘모델 동물’을 사용하듯이, 식물학자도 ‘모델 식물’을 쓴다. 식물분자생물학을 한다고 하면 주로 애기장대를 연구한다. 애기장대는 유전자 조작을 하기 쉽다. 키가 30㎝쯤 되고 1년생풀이다. 꽃은 싹이 나온 지 6주가 지나면 핀다.
   
   애기장대는 한국에도 있다. 보통 ‘산장대’라고 알고 있지 않나 싶다. 한국인은 애기장대는 거의 잘 모를 것 같다. 책꽂이에서 ‘한국식물생태도감’을 꺼내 찾아봤다. 역시나 도감에 ‘애기장대’가 나오지 않는다.
   
   박사과정 때는 애기장대 씨앗의 발아를 조절하는 유전자 기능 연구를 했다. NTL8이라는 애기장대의 세포막에 결합되어 있는 전사인자(transcription factor)가 있다. 세포 바깥조직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세포막에 붙어 있던 NTL8 전사인자가 세포핵 안으로 간다. 스트레스 정보를 세포 안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전사인자는 세포핵 안에 들어가면 특정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게 된다. DNA에 있는 특정 유전자를 읽고 그 결과로 특정 단백질을 만들어내거나 반대로 읽지 못하게 해서 특정 단백질을 만들지 못하게 한다. 씨앗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발아가 억제되는데 이 과정에 NTL8이 하는 역할을 알아낸 게 나의 박사과정 때 연구다.
   
   
   식물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은?
   
   씨앗이 싹을 틔우는 건 그 식물 입장에서는 가장 중요한 결정이다. 식물은 생애주기에서 몇 가지 주요 결정을 하게 된다. 그 첫 번째 선택이 발아 시기다. 식물은 결정을 잘 내리기 위해 자신의 주변 환경을 계속 모니터링한다. 씨앗이 어떻게 주변 환경을 모니터링하느냐고? 진짜로 한다. 여러 환경 스트레스가 있다. 예컨대 토양이 너무 건조하거나 염분 농도가 높으면 씨앗은 발아하지 않는다.
   
   대학원 때는 실내에서 애기장대를 키우느라 야외에 나가볼 기회가 없었다. 생태계를 알고 싶어 식물 연구를 했으나 실험실 밖으로 거의 나가지를 않았다. 박사 끝날 때쯤 자연에 나가서 식물을 연구하고 싶어졌다. 야외에서 자라는 애기장대를 우연히 발견한 게 계기였다. 실험실에서 볼 수 없었던 표현형을 발견하고 자연에서 더 식물을 연구하고 싶었다.
   
   독일 막스플랑크 소사이어티는 86개 연구소(2021년 1월 현재)를 갖고 있고 이 중 화학생태학연구소는 옛 동독 땅인 예나에 있다. 예나는 생태학이라는 말의 탄생지이기도 하다. 1800년대 예나대학 교수로 일했던 에른스트 하인리히 헤켈이 생태학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언덕 위에 있는 막스플랑크 화학생태학연구소 건물은 참 아름다웠다. 5월에는 특히 더 좋았다. 그곳에 디렉터 중 한 명인 이안 볼드윈(Ian Baldwin) 교수 그룹에 합류했다.
   
   이안 볼드윈 교수는 미국 사막에 자생하는 ‘코요테담배’의 생태를 연구했다. 미국 유타주의 사막(The Great Basin Desert)에 가서 매년 3~6월 실험을 했다. 그는 이곳에 트레일러 3대 등 시설을 갖추고 있다. 그는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로 옮기기 전 미국 뉴욕주 버펄로에 있는 뉴욕주립대학 교수로 일한 바 있다. 그 시절에 유타주 실험장을 마련했다. 1990년대 후반의 일인데, 실험장을 찾아 미국을 자동차로 돌아다니다가 우연한 계기로 그곳과 인연을 맺었다. 이곳은 야생 코요테담배가 자란다.
   
   나는 독일에서 일할 때 1년에 한 차례 미국 유타주 사막에 갔다. 이곳은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차로 1시간30분 거리이고, 라스베이거스에서는 북쪽으로 2시간 거리다. 한 번 가면 3~6주 정도 머물렀다.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예나에서 일하는 동안 4번 방문했다. 카이스트 교수로 일하면서는 2019년에 간 게 마지막이었다. 코로나19 대유행 직전이다. 코요테담배는 다 자라면 키가 1m는 된다. 흰색 꽃이 핀다. 이곳 대전의 실험실에서도 코요테담배를 키우고 있다.
   
   

▲ 코요테담배 꽃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코요테담배 꽃의 상하 움직임에 주목하다
   
   식물은 곤충의 공격을 받으면 곤충을 쫓아내기 위해 화학물질을 만들어낸다. 만들어내는 물질이 많다. 그 물질의 기능을 알기 위해서 유전자 조작을 통해 코요테담배가 그 화학물질을 못 만들게 하고, 그걸 유타주 사막에 가서 심는다. 그리고 유전자 변형 코요테담배를 관찰하면 화학물질의 생태적 기능을 연구할 수 있다.
   
   막스플랑크연구소에 가기 전 이안 볼드윈과 연구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식물 중에는 산불이 난 뒤에 씨앗을 틔우는 게 있다. 산불로 따뜻해진 지면의 온도나, 산불 연기 속에 들어 있는 물질을 씨앗을 틔울 때라는 신호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코요테담배 씨앗은 산불 이후에 발아한다. 이안 볼드윈의 실험실은 산불 연기 속에 들어 있는 화학물질을 찾아왔다. 코요테담배 씨앗의 발아 신호물질이 무엇인가를 알고 싶어 했다. 이안 볼드윈 교수는 “물질을 거의 찾았다”라며 연구노트와 물질이 든 병을 건넸다. 나는 “해보겠다”고 했다. 전에 실험실에 있던 연구자가 하던 연구였다.
   
   그런데 확인해 보니 거의 다 찾았다는 물질이 없었다. NMR 기계로 측정할 수 없을 만큼 소량 있었던 것이다. 찾은 게 아니었다. 어이가 없었다. 예나에 도착한 지 2~3주 지났을 때였다. 교수에게 말했더니 “다른 프로젝트 할래, 아니면 그 물질을 네가 찾아볼래”라고 되물어왔다. 나는 화학과 출신이지만, 분석화학을 공부하지 않았다. 물질을 분석하고 거기에 어떤 성분이 들어있는지는 질량분석기를 포함한 다양한 장비를 이용해서 찾아야 한다. 물질을 찾는 연구를 하려면 ‘분석화학’을 처음부터 공부해야 했다. 물론 도움을 줄 테크니션이 있기는 하지만, 내가 분석화학을 알아야 했다. 때문에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하는 기간이 5년으로 길어졌다. 그리고 나는 분자생물학과 분석화학이라는 분야를 다 이해하는 한국에서는 드문 연구자가 되었다.
   
   얘기를 자세히 해달라고 앞에 있는 기자가 요구한다. 남의 ‘아픈 과거’인데…. 산불에 의해 발아하는 식물은 코요테담배 말고도 많다. 호주의 한 연구팀이 산불 연기를 맡아 발아하는 식물을 추적했다. 호주연구팀은 2004년에 물질을 찾아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내가 독일에 도착하기 5년 전 일이다. 내가 연기가 잔뜩 들어있는 물을 분리해가면서 씨앗을 발아시키는 물질을 찾는 작업을 해보니, 호주팀이 찾았다는 물질이 나왔다. 물질 이름은 ‘카리킨(Karrikin)’이다. 이안 볼드윈의 실험실은 카리킨은 코요테담배를 발아시키는 물질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카리킨이 코요테담배를 발아시키는 물질인지 아닌지 여부를 재확인해야 했다. 카리킨으로 실험해보니 코요테담배 씨앗이 싹텄다. 연구 시작 1년 만인 2010년이었다. 이안 볼드윈 교수 연구실이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다. 실험실에 있던 다른 학생이 카리킨이 코요테담배의 씨앗발아 물질이 아니라고 보고했으나 그것은 잘못이었다. 나는 또다시 허탈했다. 나는 그의 연구가 잘못된 것이라는 건 확인했으나 이런 결과는 논문이 되지 않는다. 호주팀 연구를 확인한 것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박사후연구원은 논문이 필요하다. 논문을 써야 대학이나 연구소에 취업할 수 있다. 2년 계약하고 독일 예나에 갔는데 1년을 그렇게 날렸다.
   
   
   밤에만 꽃이 고개를 드는 이유
   
   새로운 연구 프로젝트를 찾아야 했다. 마음이 불편했다. 아침저녁으로 연구소 건물 옆의 온실을 드나들었다. 온실에서 키우는 코요테담배를 하루에도 몇 번이나 가서 관찰했다. 그러다가 이상한 걸 보았다. 코요테담배의 꽃이 상하운동을 하고 있었다. 코요테담배 꽃은 밤에 피는데 밤에는 고개를 들고 있으나 낮에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밤이 되면 고개를 들었다. 온실 정원사에게 꽃의 ‘상하운동’을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처음 듣는 얘기라고 했다. 실험실의 다른 연구원도 모른다고 했다. 나는 코요테담배의 상하운동을 연구하게 되었다.
   
   코요테담배의 상하운동은 특이한 움직임이다. 예컨대 할미꽃은 고개를 한번 숙이면 그걸로 끝이다. 다시 고개를 들지 않는다. 코요테담배 꽃은 왜 고개를 끄덕일까? 코요테담배가 꽃을 피우는 기간은 2~3개월인데, 관찰을 해보니 상하운동은 처음 이틀에만 일어났다. 이럴 때 상하운동이 왜(why) 일어날까 묻는 건 생태학자들이고, 어떻게(how) 일어날까를 묻는 건 분자생물학자다. 나는 ‘왜’와 ‘어떻게’를 다 연구했다. 이후 4년간 이 연구를 했다.
   
   ERC(European Research Council)라고 유럽연합(EU)이 만든 가장 큰 연구지원기관이 있다. ERC로부터 5년간 매년 7억~8억원의 연구비를 받게 되었다. 나의 작은 관찰에서 시작된 연구주제가 교수와 동료 연구자들의 참여로 인해 더 멋진 주제로 확대되었다. 나는 연구비를 지원받아 코요테담배의 상하운동을 연구했고 프로젝트 그룹 리더가 되었다.
   
   코요테담배는 수정을 할 때 박각시나방(Manduca sexta)이라는 곤충의 도움을 받는다. 박각시나방은 밤에 코요테담배의 꿀을 먹으러 온다. 그리고 화분(pollen)을 이 꽃에서 저 꽃으로 옮긴다. 그러니 박각시나방이 꿀을 먹을 수 있도록 코요테담배는 꽃의 고개를 들고 있어야 한다. 낮에 꽃이 고개를 숙이는 이유는 뭘까? 코요테담배는 사막에 산다. 사막의 낮은 덥다. 고개를 들고 있으면 꽃 속에 있는 꿀이 낮의 열기로 인해 증발해 버리고 말 것이다. 꿀을 아끼려면 고개를 숙이는 게 낫다. 코요테담배는 꽃을 피우고 이틀이 지나면 더 이상 꽃의 상하운동을 하지 않는다. 왜? 수정이 끝났기 때문이다. 상하운동을 할 이유가 없다. 그냥 서 있다.
   
   연구의 어려움은 꽃의 상하운동이 유전적으로 어떻게 조절되는지를 알아내는 데 있었다. 대표적인 모델 식물인 애기장대는 유전자 변형을 위한 도구를 전달하기가 쉽다. 6개월이면 유전자가 변형된 씨앗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코요테담배는 유전자 변형을 위한 도구를 전달하기가 쉽지 않다. 유전자 변형에 1년~1년 반이 걸렸다. 유전자 변형을 쉽게 할 수 있는 도구인 크리스퍼 유전자가위가 나왔는데도 여전히 유전자 변형을 하기가 어렵다. 코요테담배의 유전자 발현을 조절해 상하운동이 없어졌거나 상하운동을 하는 시간이 달라진 유전자 변형 코요테담배를 만들었다. 상하운동과 관련된 생체시계 유전자(LHY·ZTL)가 무엇인지를 보인 것이다. 논문은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 나왔다. 2015년 영국 식물학 학술지 ‘뉴피톨로지스트’(New Phytologist·‘새로운 식물학자’라는 뜻)에 나왔다.
   
   
   꽃향기의 유전자를 찾는 중
   
   막스플랑크연구소에 있을 때 한국의 한 매체에 막스플랑크연구소와 기초과학연구원(IBS)을 비교하는 글을 썼다. 대전에 본부를 둔 IBS가 생기고 얼마 되지 않을 때였다. IBS는 만들면서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나 일본의 리켄연구소를 많이 참고했다. 나의 글을 보고 IBS 김진수 유전체교정연구단 단장이 연락해왔다. 어떻게 보면 IBS를 비판하는 글을 쓴 나에게, 연구단의 식물팀장으로 일해 달라고 했다. 2014년 8월에 한국에 돌아왔다. 실험실도 없는 상황에서 식물팀을 만들어 갔지만 언제 또 이런 연구 지원을 받으면서 좋은 동료들과 실험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낌없는 지원을 받았다. 하지만 젊은 연구자들은 IBS에 오래 있을 수 없다. 5년 계약직으로 일하고 대부분 나가야 했다. 다행히 유전체교정연구단의 연구 성과가 좋아서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여러 대학의 교수로 임용이 되었다. 나도 3년 후인 2017년 10월 카이스트 생명과학과 교수로 옮겼다.
   
   카이스트에서는 세 가지 연구를 한다. 코요테담배의 유전자 교정을 쉽게 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다. 또 코요테담배가 만들어내는 꽃향기를 만드는 유전자를 찾고 있다. 페튜니아를 실험실에서 코요테담배와 함께 키우고 있는데, 페튜니아나 장미에서 꽃향기를 만드는 유전자를 찾고 있다. 이와 함께 식물과 해충의 상호작용을 연구하고 있다. 연구를 위한 곤충실은 사무실 바로 옆에 있다. 곤충실에 있는 톱다리개미허리노린재들이 콩을 좋아한다. 콩과 노린재의 상호작용을 보고 있다.
   
   가장 최근의 연구 성과는 역시 학술지 ‘뉴피톨로지스트’에 보고한 게 있다. 지난 6월에 논문이 게재됐다. 코요테담배 줄기 속의 부드러운 조직을 먹고 자라는 트리코바리스라는 바구미가 있다. 바구미는 코요테담배 줄기에 알을 낳고, 깨어난 애벌레는 줄기 속으로 들어가 그 속을 파먹고 자란다. 바구미의 공격에 코요테담배는 부드러운 속살을 딱딱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대항한다. 리그닌이라는 물질이 있다. 딱딱한 나무 조직을 이루는 게 리그닌이다. 코요테담배는 바로 부드러운 줄기 속부분을 리그닌으로 바꾼다. 부드러운 부분이 딱딱해지니 애벌레가 파먹기 힘들 것이다. 우리 연구를 통해 식물이 리그닌이라는 물질을 생산해서 곤충 공격에 방어를 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곤충의 방어 호르몬 합성에 관여하는 유전자 발현을 억제했고, 그러면 부드러운 줄기 속이 딱딱하게 바뀌지 않는다는 걸 증명했다.

   
   인터뷰를 하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서울대 화학과 은사인 박충모 교수다. 전화를 받았다. 말씀이 길어졌다. 전화를 바로 끊을 수는 없었다. 한참 지나 통화가 끝났다. 그러고 보니 오후 5시가 가깝다. 다른 미팅 시간이 임박했다. 기자에게 5분 안에 끝낼 수 있겠느냐고 했다. 기자는 식물학 분야의 큰 연구주제가 무엇이 있느냐고 물어왔다. “언제 어떻게 꽃을 피워야 하는지 식물이 어떻게 아는가 하는 게 식물학의 큰 질문 중 하나”라고 설명해줬다. 생각보다 긴 인터뷰였다.
 

 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C08&nNewsNumb=00267710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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